38년만에 개방한 만물상 !!
!!암릉중에서 최고의 백미




















가야산은 조선 8경의 한군데로 주봉인 상왕봉을 중심으로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병풍을 친듯 이어져 있으며 소의 머리 처럼 생겼다하여 우두봉이라고도 불리우고 있고,상왕봉의 상왕은 모든 부처를 일으키는 말에서 붙여진 산 이름이라 한다.
해인사쪽의 흥류동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사시사철 인파가 붐비는 곳이며 국내 3보 사찰중 법보사찰로 유명한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이번 37년만에 속살을 드러낸 가야산 만물상 암릉은 가야산의 숱한 암릉중에서 최고의 백미를 자랑할만한 곳으로 설악산은 보는 암릉이고 속리산의 암릉은 타는 암릉이라며 가야산 만물상의 암릉은 보고, 타는 종합판인 암릉을 유감 없이 보여 준다.
처녀상, 남근석, 원앙바위,개구리바위, 시루떡 바위,독바위, 입석대 등등 온갖 형상을 한 암봉들이 있으나 37년만의 개방으로 아직 정확한 명칭이 없어 산행을 하면서 나름데로 이름을 붙여 보는 재미 또한 솔솔 하다.
○ 해인사(海印寺)
신라 애장왕 3년(802년)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나라의 협력을 얻어 창건했다. 국보 32호인 팔만대장경 경판을 소장하고 있으며, 또 국보 52호인 장경각을 비롯해 15점의 보물과 200여점의 사보 등 수많은 문화재와 청량사, 백연암, 원당암, 홍제암 등 75개 부속 말사와 15개의 부속암자가 있다. 절을 둘러 싼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들은 해인사를 찾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국보 32호 팔만대장경은 한국의 대표적인 보물로서 경판 수는 1512부, 6791권, 8만1258장이다. 그중 121장은 동일판이며, 18장은 결판으로 있던 것을 1915년에 다시 조각해서 보완했다.
몽고의 침략에 대한 국난극복을 기원하는 뜻으로 고려 23년(1236년)부터 16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된 이 경판은 세로 24㎝, 가로 69.6㎝, 두께 약 1.6~3.9㎝를 전후한 크기에다 양단에 나무를 끼워 판목의 균형을 잡고, 네 모퉁이에 동판을 붙여 고정시키고 각자(刻字)된 전면에는 옻칠을 해서 영구보존을 기했다. 사용된 판목은 남해와 거제지방에서 나는 후박나무를 베어서 수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 놓았다가 건져 그늘에 말려 글자를 새겼다. 편에 양각된 글자는 23행에 각 행마다 14자씩 새겨져 있다.
○ 백련암
성철 큰스님이 생전에 기거했던 해인사 백련암은 기암들에 둘러싸인 명당중의 명당으로, 옛날에는 신선들이 놀다 간 곳이라 하여 신선대라고도 불렸다. 해인사 산내 암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한가할 뿐 아니라 조망 또한 시원하다. 특히 암자 주변에 우거진 노송과 환적대, 절상대, 용각대, 신선대와 같은 기암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예부터 백련암터를 가야산의 으뜸가는 절승지로 일컬어왔다. 백련암을 처음 창건한 연대는 잘 알 수 없고 다만 선조 38년 곧 서기 1605년에 서산대사의 문하였던 소암스님이 중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몇 해 전 성철스님께서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였다.
○ 홍제암
해인사 일주문에서 서쪽으로 200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암자.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이곳에 은거하던 사명대사는 광해군 2년에 세납 예순일곱으로 입적하였는데, 광해군은 스님의 열반을 애도하여 자통홍제존자(慈統弘濟尊者)라는 익호를 내리고 이곳에 비를 세웠다. 그 뒤로부터 스님의 익호를 따 이 암자를 홍제암이라 했다. 사명대사의 비문은 홍길동전으로 더 잘 알려진 석학 허균이 지은 것으로, 문장도 아주 빼어날 뿐더러 대사의 행장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사적으로서의 값어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