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

[스크랩] [섬서성] 서안 & 연안

울산 여의주 2015. 11. 28. 12:19

여행 지기 5명과 단출한 중국 여행갔다 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무식한 자유 여행을 기획하였는데 여성분들이 포함이 되어 있어서 

여성분 우대 차원에서 연안에서 핑야오 고성은 차량을 렌트하고 

또 호텔도 국내에서 모두 예약을 하여서 움직였습니다..

그래도 이동 거리도 많고 많이 걷고 또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보는 일정이라 편하지는 않았던 모양..ㅎㅎ


첫날 심야 항공으로 서안이동..

호텔방에서 쪽잠!!
그리고 서안 역으로 이동하여 연안까지 이동합니다..

부산의 대부분 저가 항공..
여행사들이 단체로 이용하는 경향이 많다보니 심야에 출발하고 귀국도 심야 귀국 일정이 많습니다!!
단체 여행객의 경우에는 일하고 항공 이용하고 새벽에 귀국하니 바로 근무가 가능하니 선호도가 있겠지요..

여행사도 비행기에서 잠을 떼우는 것을 숙박으로 처리하니 좋고..

어떻게 보면 여행사와 항공기는 운명을 같이하는 동반자 입장입니다!!
서안역!!   과거와 달리 많이 깨끗한 분위기입니다..


열차는 정시 출발합니다..

서안에서 출발하여 연안으로 가는 보통 열차!!
출발은 정시..  연착도 그다지 하지 않으며 전 열차가 좌석제로 운영됩니다!!

열차 안내판입니다..

K8162 쾌속열차..   8시28분 출발..   연안행!!


중국 열차 날이 가면 갈수록 깔끔해집니다..

보통 열차는 그냥 번호, 쾌속은 K, 특급은 T 그리고 대부분은 대도시는 "까오티"로 불리우는 고속철이 연결됩니다..

중국 열차!!   16억의 중국인들 이동을 책임지는 대동맥입니다!!

열차 내부 모습..

좌석은 "경좌"로 불리우는 일반 좌석, "연좌"로 불리우는 특급 좌석..

그리고 "경와"로 불리우는 일반 침대칸, "연와"로 불리우는 특급 침대칸이 있으며 또 입석이 판매됩니다..

가격은 각각 배로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가는 연안까지 4시간 이동 우리 좌석이 50원선..(한화 10,000원)

"연좌"는 2만원, "경와"는 4만원, "연와"는 8만원선..

"연와"의 경우 비행기와 비슷하거나 비싼 경우도 있으나 기차 여행을 선호하는 중국인들 이용 많이 합니다..

일반 기차는 15일전 예매를 시작하며 인기 노선은 예약 필수..

고속철의 경우에는 "연와"처럼 비싼 금액으로 비교적 예약없이 당일 구매도 가능한 편입니다!!


연와가는 길의 풍경..

"야오똥"으로 불리우는 토굴집도 많고 대부분 식물들은 구황 식물이 재배됩니다!!

특히 옥수수 재배가 눈에 가장 많이 보이네요!!


연안에 도착했습니다..

역앞으로 나가니 3일동안 이용하는 기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26세의 젊은이..  작은 아들과 같은 나이..
"샤오송"으로 칭하면서 즐겁게 같이 지냈습니다!!


연안의 랜드마크 보탑산입니다..

마치 우리 단양을 연상하게 하는 강의 합류 지점에 중심가가 위치한 도시 연안..


한국인에게 생소한 도시 섬서성의 연안..

중국인들은 모두가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대장정의 종착점!!

1928년부터 진행된 북벌을 완료하며 불완전하나마 중국의 전역을 장악한 장제스..

1930년부터 1933년 3월까지 중국 공산당 토벌 작전을 강행..

장제스는 일본의 침략으로 부터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부부터 통일하여 결속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인물입니다!!

공산당의 게릴라식 활동으로 토벌 작전의 성과가 미미하자 항일을 위하여 지원받은 구미의 군사원조물자와 

50만의 대군으로 1930년 10월부터 제5차 토벌 작전을 감행합니다!!


존폐의 위기에 처한 공산당은 그들의 근거지였던 장사의 루이진에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1여년간 중국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이른바 "2만5천리 대장정"이라는 역사에 없던 퇴각 작전을 감행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자료에 의하면 11개성, 24개의 강, 1,000개 이상의 산을 넘으면서 뚜렷한 목적지없이 퇴각하였으며

1935년 10월20일 산성성 북쪽 연안의 우치에서 대장정이 종결됩니다!!


장정은 중국 공산당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외형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탈출당시 87,000명이었던 병력은 4,000명만이 살아 남았으며 그들과 함께 이동한 많은 민간인들도 같은 신세..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장정을 통하여 유격전을 공식 전술로 채택하였으며

마오쩌뚱은 전권을 장악!!  코민테른으로 부터 독립하였으며 풀뿌리보다 질긴 생명력을 지니기 시작..

마침내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되던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며 1948년10월 전중국을 통일했죠!!


그들은 장정을 통하면서 접촉한 주민들에게 국민당군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농민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

중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대장정을 마감하게한 국민당의 추격은 공산당의 역량이 아니라 거꾸로 일본이 협조를 한 결과..

상해 남경대학살로 중국을 압박하는 일본에게 장제스는 일본보다 공산당의 괘멸이 우선이며, 하나된 중국으로

일본에게 대항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주력 국민당군을 홍군의 추격에 투입합니다..


보탑산에 올랐습니다..

일본의 침략에 고초를 겪던 만주군벌 출신의 장학량은 장제스에게 일본과의 대항을 권유..

그러나 양외필선안내’(, 밖을 막으려면 안을 먼저 안정시켜야 한다)

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장제스는 항일을 권유하는 장학량을 핍박..

"곡간"으로 장제스를 설득하던 장학량은 "병간"으로 입장을 선회하여 만주를 살리기로 결정합니다..

쿠데타를 야기한 장학량에게 장제스는 쪽팔리게 잠옷바람으로 화청지의 뒷산에서 체포됩니다!!
후환을 두려워한 군벌은 장제스를 처형하려고 하나, 거꾸로 만주군벌과 협력한 공산당의 "주은래"의 주선으로 

목숨을 구하고 "항일구망운동"에 협조하면서 "국공 합작"이 이루어집니다..

장제스는 이후에도 수도 없는 쪽팔린 행동을 합니다만 여기서는 생략..


공산당의 성지답게 보탑산의 중앙에도 공산홍기가 펄럭입니다..

"국공합작"에서 국민당군의 일본군과의 싸움에 주력하나, 유격전을 공식 작전으로 채택한 홍군은 일본군과의 전쟁보다

자신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에 주력하면서, 국민당군으로 부터 지원받은 물자로 장정으로 괘멸된 홍군을 자생력을 키우면서

인민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면서 이미 민심을 잃은 중국 농민들도 부터 지지를 얻기 시작합니다..


보탑산의 랜드마크 "보탑"입니다..

괘멸위기에서 일본의 침략과 "서안 사태"로 다시 명맥을 유지한 홍군과 공산당은 이후 기적과도 같은 내전에서의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1948년 10월 천안문 광장에서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선포식을 가집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입니다..ㅎㅎ


보탑산옆에 또 높은 전망대가 있어서 오르기로 합니다..

높은 곳 증후군..ㅎㅎ


연안 중심가 전경..

마치 우리 단양과 비슷하게 강의 합수 지점에 위치하였습니다!!


축구장도 보이는데 연안에도 프로축구팀이 있나요??

왼쪽에 보이는 주거형태가 "야오똥"이라고 불리우는 섬서 산서성 산악 지역의 토굴집입니다..

추운 겨울 난방이 필요없는 주거형태하고 합니다!!
연안 홍군들의 혁명의 상징이 되어버린 주거 형태이죠!!


중국국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홍군의 연상하게 하는 장소가 연안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적성루"에 대한 설명이 적여있는 석판..


연안 시내 전경..

혁명의 상징적인 도시답게 대장정 당시 홍군의 "혁명유지"가 연안 인근에 많이 있으며

공산당의 관리가 되는 장소도 무려 13개입니다..

우리는 그중에서 "양자령"과 "남니만" 혁명 유지를 직접 가 보았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혁명정신을 알기위해서라고 하기 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연관이 있는 장소이기에!!
만약에 홍군이 아니라 국민당 정부가 중국본토를 장악하였으며 우리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보탑산을 구경한후 또 다른 연안의 관광지인 유리탑이 위치한 맞은 편의 청량산으로 이동합니다..

첫날!!  연안 관광.

도착하여 보니 차량이 필요없이 그냥 시내에 호텔을 정하고 걸어서 구경해도 충분한 장소이네요!!ㅎㅎ

출처 : 만자로 지구촌 방랑기..
글쓴이 : 김재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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