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휙 하고 바람이 지나간다.
더러는 실체가 없는 바람의 모습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때는 오케스트라 연주 속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저주파 울림을 감지하던
그런 진지함과 예민함도 그리울 때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수시로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고
사람도 그렇게 시류에 따라 흔들리고 흘러가는지?
그것을 인생이라 하는지?
산을 앞에 두고, 건성건성 보내버린 세월이 불현듯 떠오른다.
믿음의 산처럼, 천날을 만날을 의연하게 견뎌내지 못하고…
또 한번의 세월이 기억의 강을 건너고 있다.

종이와 먹으로만 표현해 놓은 것 같은 이 한 장의 그림 앞에
까닭도 없이 숙연해졌다.
참 아름다운 산의 그림 앞에 무수한 날 오르내렸던 산의 실체를 만난 것 처럼…

언제:2012년 12월 16일
어디를:경주 산내 내칠리~정족산~조래봉~장륙산
누구와:소풍 회장님 외 40명




산행에 앞서 간단한 의식을 치뤘다.
지난 11월 총회에서 새로이 봉사자로 임명이 되신
총무팀의 동글이님과 호박꽃님,
산행팀의 소백산 뚝배님과 도깨비님,
산방 고운님들의 산길이 무탈하고 즐겁도록 봉사와 헌신의 쉽지 않은 마음을 내어주신 네분께
회원들이 스틱을 들어 감사를 표하고 뜨거운 박수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임기를 다하는 그날까지 맡은바 소임을 다해주실 것을 믿는다.




산행 들머리는 경주 산내면에서 청도 운문면 방향으로 가는 20번 국도를 따르다가
외칠리를 지나면서 우측 우라리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 한 뒤, 두 번째 다리(내칠2교)를 건너서 차를 내려
좌측 또 하나의 다리를 건너 합수점 중앙능선, 산불 감시초소 뒤쪽으로 등로가 열려있다.
안개는 동창천을 따라 짙게 내려와 있고…



갑자기 선두그룹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드니 멧돼지 일가족 여섯 마리가 줄을 지어 내달리고 있다.
숲에 가려 질주하는 멧돼지 일가를 모두 촬영하지는 못했지만
한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정기산행에서 멧돼지 일가를 만난 건 대원들에게 또 하나의 흥밋거리이자 길조는 아니었을는지?





정족산 까지의 산길은 해발고도 600m급의 산을 특별한 조망 처 없이 낙옆 깔린 등로를 오르내리고
나목의 숲 사이로 단석산에서 사룡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언뜻언뜻 보일 뿐이었지만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 재미는 여느 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09시 35분경 시작된 산행이 11시경 정족산에 들었다.





전체 산행 거리는 평소대비 여유가 있고 날씨마저 포근하니 산상 오찬 또한 12월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아니다.
꽃남자님 내외분의 정성 가득한 도시락, 이맘 때 쯤 미각을 돋워주는 과매기에
뜨겁게 끓여내는 라면과 어묵탕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산 아래 어디에서고 보기 어려운 성찬이 차려지고…




산상 자축연이 벌어졌다.
종주 산악회를 지향하고 산길을 열어온 지 12년,
그리고 2012년, 24번의 정기산행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송년 산행을 자축하는 의미로
오늘 산행의 주무대장인 창아 대장께서 케잌을 준비 해 오시고
소풍 회장님께서 축하연을 주도하시니 한순간 고요했던 산상에서 뜨거운 함성이 일었다.
오랜 날, 다사다난했던 세월 속에서도 산으로의 행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감을 정녕 축하 할 일이다.
처음의 그 모습, 처음의 그 마음으로 대한백리의 정진을 진정으로 바란다.



올해 들어 매월 넷째 주마다 일천오백리 영남알프스 주능선 종주를 시행하고
주능선에서 벗어난 분맥 구간은 셋째 주 정기산행에 편성해 영알을 걸어봄으로서
우리 가까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군이면서 가장 친숙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영남알프스를
제대로 둘러보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행 중에 있다.
중식 후, 조래봉을 거쳐 산내 내칠리와 지촌리를 잇는 고개마루까지 내려섰다가
장륙산 마애불이 있는 곳 까지 역시 한적한 산길을 걸었다.
오늘 걷는 이 길은 청도 내호리에서 시작, 사룡산까지 북진한 마루금이 진행방향 오른쪽에 늘어섰고
진행방향 왼쪽으로는 사룡산에서 남진하여 단석산을 거쳐 고헌산을 향하는 마루금 가운데를 걷는다고 이해하면 되는 구간…
특히 영남알프스가 품고 있는 도시, 울산, 경주, 양산, 밀양, 청도에 거주하는 산꾼이라면
당 산방의 영남알프스 종주 프로젝트에 참가해 보는 것이 영남알프스를 알아가고
영남알프스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게 하는데 분명코 일조를 할 것이다.



드디어 오늘의 정점,
눈부신 영알의 속살이 들어나 보이는 곳,
해발고도 686m에 불과한 장륙산 아래 전망대에서 펼쳐 보이는 풍광은
말로 형언키 어려운 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눈으로 가만가만 그려내어
마음속에 차곡차곡 채워 넣을 일이다.





신라의 여섯 장수가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장륙산, 육장굴,
그리고 여섯기의 무덤,
예나 지금이나 산꾼들의 발길이 뜸해서 등로에는 인적이 드문데
반듯한 임도가 산 아래까지 밀고 올라오니 무속인들이 전에 없이 진을 치고 있다.
여섯 장수의 혼이 깃든 장륙산이 영알 산군 중에서 샤머니즘의 메카가 되려는지?
16시경, 동창천 지촌교가 바라보이는 구 주유소 옆으로 전 대원 내려서면서
2012년 12월 스물네번째 마지막 정기산행은 즐거움과 행복한 산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끝이났다.

후기를 적으면서 밑도 끝도 없이 오케스트라 연주 속에서 콘트라베이스 운운했던 것은
낮고 별 특징이 없는 산이 있어야 높고 웅장한 산이 있고
높고 멋스러운 산이 어깨를 펼쳐 내려서 낮은 산들이 있는 법인데
유별나고 볼거리가 많은 산만을 산으로 알고 그런 산만을 찾아다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장륙산 전망대에서 불현듯 들어서였다.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의 들어나지 않는 연주가 필요하듯이
산의 모습도 그러하거늘…
산은 어떠한 모습이든 간에 사람에게 ‘호연지기’를 기르게 하는 최후의 보고(寶庫)이다.
올 한 해 동안 대한백리와의 동행이 즐거웠고
다가올 세월에도 대한백리와의 동행을 그리워 할 것이다.
동행해 주신 고운님들과 고생하신 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 올리면서 이만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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