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여행 (7)
(7)신강성의 보석 투르판..
유원역에서 밤 10시 반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5시 30분경 투르판 역에 도착합니다.
역에서 투르판 시내까지는 약 70km..
포도의 고장 “투루판”시내답게 투루판 시내는 포도넝쿨이 있는 휴식처가 많습니다..
7-8월이 되면 이 휴식처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다고 합니다..
더운 여름철이 관광 성수기인 이유!! 그런데 한낮의 온도가 55도까지 올라간다는군요!!
투루판 시내 학교..
신기하게도 축구장이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 영토도 엄청나게 넓지만 사람이 많고 또 사람이 살수 있지 지역은 인구에 비하여 심각하게 부족한 편이라 넓은 운동장이 있는 학교가 그다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네 구경을 다니다보면 학교를 쉽게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대부분 넓은 운동장이 있는데 중국의 학교는 배드민턴, 탁구 정도가 가능한 실내공간만이 대부분이며 농구를 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이라도 있으면 규모가 큰 학교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은 축구는 거의 하지 못하고 실내 운동을 주로 합니다!!
중국이 탁구, 배드민턴, 농구등의 실내 종목이 강하고 축구가 “공한증”에 시달릴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근본 이유가 아닌가하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
투르판 시내 관광에 나섭니다..
도회지를 벗어나면 다시 사막의 연속!! 풍력 발전기도 많고 석유 시추 기계도 많이 보입니다.. 석유 시추기 정말 부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강지역 석유 많이 납니다!!
투루판에서 동쪽에서 45km 지점에 “고창고성”이 위치합니다..
460년 위구르 족이 고창왕국을 건립하고 13세기경 북쪽의 몽골쪽에게 멸망합니다..
성의 둘레가 5.4km이고 면적이 220만 평방미터이니 당시에는 상당한 왕국입니다..
현재 외성, 내성과 궁성등의 유허지가 있는데 대부분 오랫 세월에 붕괴되었으나 아직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지역도 상당히 있으며 상당한 규모에 엄청 놀랍니다..
궁성부로 이동하기 위하여 약 3km 정도의 비포장 도로를 나귀를 타고 이동합니다.
바로 요렇게 생긴 마차와 나귀올씨다!!
궁성부 내부의 복원 건축물입니다..
대다수가 흙벽돌로 지어진 구조물이며 또 볏짚과 흙을 이용한 구조물도 많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다시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감동이 오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곳에 오면 단절된 과거와의 조우를 하는 듯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일까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마추피츠나 앙코르왓에서 경험하는 기분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는 장소!!!
외성벽을 올라가 봅니다.. 잘 보존된 상태보다 오랫세월의 영향으로 무너지고 형태가 변형된 모습에서 더 가슴에 와닿은 삶의 현실을 느껴봅니다!!
이 척박한 자연 환경에 순응하고 또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당시의 사람들은 얼마나 하였을까요?? 살기 힘든 이런 토양에서도 왕국을 건설한 위구르인들..
이런 민족을 중국의 영토 욕심으로 복속을 하였으니 어떻게 민족적인 분쟁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본능적인 노력인 것을..
다시 나귀를 타고 왔던 성 입구로 돌아갑니다.. 여기도 예외없이 입장료 40원/인
고창고성의 보존 상태가 나쁜 것은 인근의 주민들이 집을 지으면서 건축자재로 이곳의 벽돌을 빼어내서 사용을 많이 하였다고 하네요??
고창고성에서 4km 정도 떨어진 이스타나 고분군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보았던 고창 고성의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사막지역의 습기없고 건조한 날씨의 영향으로 고분내에 부장품의 보존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현재 3-4개 정도의 고분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으며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한 부부의 미이라가 압권인데 유감스럽게 사진 촬영은 허용하지 않는다..
벽화들의 보존 상태도 아주 좋은 편인데 이 고분군에서 발견된 미이라들이 대부분이 우루무치의 “신강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사막의 건조한 날씨탓에 얼굴의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기는 하지만 과연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대영박물관의 미이라관을 본 후로 다시 들기 시작한다..
미이라도 인체의 존엄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사람의 시신인데??
고분 내부의 모습입니다.. 오기 힘든 곳이기에 관광하기는 하나 보아도 그만 안보아도 그만인 장소가 이스타나 고분군입니다..
당시 고창왕국의 시대상에 대한 연구가 가능한 고분내의 벽화들..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고분이 무수합니다..
베제클릭 천불동 석굴을 보기 위해서는 화염산을 뒤쪽 계곡으로 가야 합니다..
산의 토양들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풀 한포기 없는 전형적인 사막의 산들!!
이 거친 흙산의 계곡 기슭에 9-10세기경 위구르인들이 조성한 베제클릭 천불동이 있습니다.. 아니 흙산이라고 하기 보다는 점토가 열과 압력에 의하여 굳어진 점토암의 무르툭 계곡에 천불동이 위치합니다..
돈황의 막고굴보다는 작은 규모인데 중국의 손도 닿지 않고 근세까지 제대로 된 지배 계층이 없던 지역에 위치하여 수도 없는 약탈자들의 도굴과 이슬람등 이교도들의 훼손으로 제대로 된 유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벌집과 같이 점토암으로 무르툭강의 기슭에 위치하여 화염산과 계곡이 조화를 이루어 주변 경치는 아주 절경을 이루나 내부석굴의 훼손은 처참하다..
베제크릭이란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인데 여타 석굴처럼 절벽에 굴을 파고 입구에 문을 만들지 않고 이곳은 둥근 돔 형식으로 지붕을 만들어 장식이 화려하다. 그래서 굴이라 부르지 않고 장식된 집이라 표현을 한 모양이다..
너무 처참한 내부의 모습으로 그냥 아름다운 외부 환경만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소이다!!
베제클릭 석굴의 하이라이트는 계곡 뒤쪽에 위치한 화염산 등산..
투루판 지역이 해수면보다 낮은 분지형의 지형이라 최고 해발이 850미터 정도인데도 아주 위용이 있어 보인다!!
화염산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태양열 집열 열판 구조로 한여름에는 지면의 온도가 60도를 상회하며 산내에 설치된 온도 관측소의 기록에 의하며 82.3도까지 오른적이 있다고 한다..
붉은 사암으로 한낮이 아니어도 달구어진 불판과 같으며 산 표면에는 풍화침식 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세로로 주름진 크고 작은 무늬가 있다.
태양열에 의해 달구어진 지표면에 아지랑이라도 어른거리면 마치 산 전체가 불에 싸여 이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화염산이라 명명되었다..
화염산은 소설 “서유기”에도 등장하는데 불타는 화염산을 지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삼장법사 일행은 그 불을 끌 수 있는 파초선을 얻기 위해 우마왕의 부인인 철선 공주와 한판승부로 파초선을 빌려 49번의 부채질을 함으로서 불씨를 끄고 비가 내리게 해 무사히 화염산을 건너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화염산을 걸어 오릅니다.. 날씨가 덥지 않아 그다지 힘들지는 않습니다!!
산정에서 보는 화염산의 경치가 정말 장관입니다!!
장관입니다만 사진기를 통해본 영상은 그다지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화염산에서 달려서 내려가는 준암 영감님!! 세계 기록도 가능한 스피드..
천불동에서 20분 정도를 차로 이동한 곳에 위치한 입장료를 받는 화염산 경관구는 오히려 전혀 볼 것이 없다..
밖에서 보는 경치와 내에서 보는 경치가 전혀 다를 것이 없으니 차창 관광하거나 아니면 도로변에 잠시 내려도 충분한 장소.. 입장료도 무려 40원/인
서유기 관련 상징물과 열심히 시추작업 중인 석유 굴착기가 유일한 볼거리..
다음에 도착한 장소는 “소공탑”
청나라의 명장 어민화자가 청나라의 은공을 보답하고 알라신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위하여 은 7000냥을 투자하여 만든 이슬람식 건축물.
신장 지역에서 제일 큰 전탑으로서 높이가 44m, 직경이 10m...
탑 표면의 조각이나 건물의 품격이 청의 건축물인데도 이슬람교의 양식이 역력하며 이슬람교도들의 성지로 알려져 매년 고이방절과 같은 이슬람교 명절 때면 무슬림들이 이곳에서 참배를 한다고 한다...
규모가 대단하기는 하나 역사적으로 문외한이 되다보니 덤덤하다!!
주마간산 격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고 끝!!
바로 옆에 위치한 트루판 왕궁부 방문..
투루판 군주에 침실에 누워서 폼도 한번 잡아 보고..
교하 고성으로 이동한다!!
고창고성과 비슷한 분위기의 유적지인데 규모나 보존상태가 고창고성보다는 훨씬 좋다..
트루판 시내 서쪽 10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고대 중국의 국가였던 차사전국의 수도 유적이다.
베제클릭에서도 본 무르툭강이 갈라졌다 모이는 합수지점인 야르나즈 계곡에 위치한다.
기원전 108년부터 AD 450년까지 중국 고대의 차사전국(車師前國)의 수도였으며 450년 당의 구역으로 복속되었다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문헌에 전하는 곳이다..
웅장한 고대 도시답게 여기저기 도로의 흔적도 보이고 아직도 확실히 형태를 유지한 건물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거나 또는 유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고창고성과 교하고성중 교하고성 한곳만 보아도 충분할 듯..
트루판에서의 마지막 관광지 “카레즈”로 향한다..
엄청난 열사의 분지 지역이 투루판이 유명한 포도의 산지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열쇠로 볼수 있는 낙원이 바로 “카레스”관정이다..
멀리 천산산맥에서 만년설이 녹은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화염산 아래 지하수가 되어 흐르면서 지하수 관정이 생긴다..
화염산 아래에서 우물을 파다 우연히 지하수 관정을 발견하고 그 물을 이용한다..
투루판 분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주민들의 회의가 열리고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트루판 주민들의 식수 공급을 위한 대역사가 시작된다.. 이른바 “카레스” 관정..
화염산 아래에서 먼저 여러개의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확인하고 이후에 80m 간격으로 계속하여 관정을 파내려간다!! 약 70m정도..
파내려진 관정에 두명의 장정이 내려가 수평의 연결 굴을 뚫기 시작하며 나온 흙은 소와 기타 운반구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운반한다!!
오랜 대역사 끝에 드디어 트루판 시내에 천산의 지하수가 공급된다..
사진은 관정을 연결하기 위하여 바위에 새겨진 오래된 설계도..
왜 지하를 이용하여 무려 40km에 이르는 지하물길 “카레스”를 한 두군데가 아니라 수집군데를 만들게 되었을까??
관정을 지상으로 연결하여 40km가 넘는 사막지역을 통과하려면 물이 모두 증발하여 버린다.. 그래서 그 증발을 막기 위하여 이렇게 지하에 “카레스” 관정을 건설..
지하로 이렇게 맑은 물이 흐릅니다.. 물론 이곳은 보여주기 위하여 실내 공간을 만든 것이고 본래는 사람이 한명 겨우 지날 정도의 땅굴..
바로 이런 굴이 연결되어서 물이 흐르는 것이죠??
수작업으로 판 자국이 역력한 굴의 내부..
트루판 지역이 모두 황토흙 지역으로 파기가 쉽고 또 파고나면 바로 단단하게 굳는 지형이었기에 가능한 대역사..
베트남의 구찌 터널이나 로마의 칸타콤베와 같은 토양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토양을 이용한 인간의 감동적인 노력을 볼 수 있는 곳!!
트르판 시내에서는 이렇게 지상으로 물이 공급이 되고 이 물이 생명수가 됩니다..
좋은 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따뜻한 태양이 비치면서 충분히 수분이 공급이 되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조건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이율배반적인 조건을 카레스 관정이 절묘하게 만들어주고 트루판의 세계에서도 유명한 포도의 명산지가 됩니다..
관정으로 내려가기 위한 수직굴의 모습입니다..
지하수로 카레스는 투루판분지에 칸얼정이 1,237나 있으며 실패작으로 제외한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853개이며 총 길이는 5,000킬로미터를 넘는다.
수직굴의 개수는 상상은 초월하겠죠??
칸얼정(카레스)은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고대의 3대 공사로 꼽히는 수리시설..
2000년 전의 한(漢)대 이미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카레스 관정의 관광을 끝으로 투루판 관광을 마치고 이제 우루무치로 향합니다.
거리 180km에 고속도로도 아주 잘 뚫려 있습니다만 투루판에서 우루무치까지는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곳곳에 풍력 발전기가 설치될 정도 이동 중간중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강풍이 불어서 차량을 빨리 몰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