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홀로 빈 하늘 덩그라니 올려다봄도 좋아라.
먹빛 잉크 살짝 찍어 잎 하나 없는 나목으로 그렸어도
아득한 그리움 되짚어 오는 오솔길도 내려다보고
할퀴듯 달려드는 모진 바람도 차마 내 고운 꿈 깨지는 못하리라.
하얀 눈 소리 없이 소복 쌓이는 날이면
내 벗은 몸 위에도 하얗게 하얗게 희망이 쌓이고
파릇파릇 사랑을 키워내는 그날을 기다리게 해 주리라.
빈 바람 몰려가고 몰려오는 바람재에 서 있어도
사랑이 올 그날이 있어 결코 아프지 않으리라.

언제:2010년 12월 26일
어디를:비슬지맥 제3구간, 남성현재~헐티재
누구와:일월 산행이사님 외 26명


잃어버린 왕국, 옛 이서국의 아침을 본다.
오래 전, 청도 매전 사촌리 성하골에서 오례산성을 오른 뒤
자연 지형이 천혜의 요새로 되어있고 돌로 축조한 성곽이 뚜렷이 남아 있어서
산성의 유래를 알아보았더니 서기 297년에 멸망한 부족국가 이서국의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막강 신라의 금성까지 진군을 했었다는 전설의 이서국,
제3구간 산길은 전설의 이서국을 진행방향 왼편에 두고 오름과 내림을 거듭한다.
첩첩 산중이면서도 비교적 너른 들판,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고 터진 곳이라고는
동쪽으로 청도천이 흘러 동창천과 만나 밀양강으로 흘러드는 한 곳뿐,
잃어버린 왕국, 이서국의 병사의 심정으로 가만히 마루금을 따라본다.
대한백리 산꾼들과 같은 특공대를 조직해서 우리가 지금 비슬지맥이라고 부르는 산길을 따라 사룡산까지 간 뒤 숲재로 해서 부산성까지 진격을 한다면
오봉산에서 코앞이 신라 금성이다.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신라를 괴롭히고도 남을 진격 루트인 것이다.







자~ 진군이다.
코끝이 알싸하고 배낭을 짊어진 어깨위로 하얗게 성에가 내린다.
몸은 부지런한 발걸음 탓에 더워졌지만 몸에서 배어나온 열기는 차가운 기온을 받아
눌러 쓴 모자위로, 배낭을 멘 어깨위로 하얗게 성에로 변했다.
남성현재에서 출발, 첫 고지 484봉에서 잠깐 복장 점검을 하더니
진군 속도가 어째 이서국의 특공대 보다 더 지독하다.
거의 8km정도를 진행한 뒤 팔조령 앞둔 헬기장에서 잠시 휴식이다.
물을 마시려고 수통 두껑을 열었더니 얼어 있었다.
우스게 소리 같지만 ‘수통 얼었는지 확인하고 갑시다.’라고 말씀드렸지만...


~팔조령 통과 중~







햇살이 맑다.
전체 산행 컨디션도 좋은 편이고 어쩌다 개인 볼일을 본다고 잠깐씩 대오를 이탈하는 대원이 있기는 했지만 금방 합류를 한다.
584봉, 삼성산 가기 전 전망대에서, 오늘 코스 중 유일한 정상석이 있는 삼성산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잠시 여유를 즐길 뿐 약17km를 진행한 뒤,
밤티재 내려서기 전 등로를 가로막고 바람을 피해 중식시간을 가진다.
여기서 잠시 경험담,
백두대간을 이어가던 때이다. 눈이 내렸던 겨울날,
하늘재에서 대미산 코스로 진행을 하다가 후미에 쳐진 몇 분이 계셔서 20여분
산길에 대기한 적이 있었다. 딴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기다렸지만
선두를 생각해서 서둘러 갈려고 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체온이 식고 컨디션이 떨어져 버렸던 것,
마음만 앞세워 무리하게 진행을 했다가는 부상을 당하기가 딱 알맞은 상황이었다.
동절기 산행에서 중식시간 또한 몸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고
중식 후 컨디션을 끌어 올린 뒤 정상적인 진행을 함으로 해서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통점령~




중식 후 산길은 편안했다.
통점령 억새밭은 말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억새밭 사이로 난 오솔길은 보기만 해도 포근함과 여유로움이 배여 있었다.
이 후 산행은 겨울 햇살이 긴 사각으로 드는 방화선 편한 등로를 따라 열려 있었고
가끔씩 이즈음에 산꾼들의 발길을 미끄러지게 하는 낙옆이 쌓인 경사로가 있기는 했지만
큰 부침 없이 이름도 이상(?)한 헐티재에 내려설 수 있었다.
잃어버린 왕국, 이서국 병사들의 진군과 같았던 비슬지맥 제3구간의 산길이었다.

2010년, 님들과 함께해서 행복한 산길이었음에 감사드리고
2011년, 더 건강하시고 즐거운 산길 열어 가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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